영국군 vs 프랑스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소개 [편집]
2. 백년 전쟁 [편집]
영국과 프랑스의 다툼중 제일 유명하고 제일 길었으며 제일 반전이 많았던 싸움.
프랑스의 가스코뉴 지방과 플랑드르 지방의 지배권 문제와 프랑스 왕위계승 문제가 얽혀 벌어진 전쟁으로 백년전쟁이라는 이름대로 무려 100여년이나 벌어진 전쟁인데 프랑스는 100년 전쟁의 극후반부를 제외하곤 제대로 이겨본적이 전무하다(...)[1] 지금이야 두 나라 국력이 비슷비슷하지만 당시 백년전쟁 초기에만해도 인구수건 생산력이건 장비의 질이건 영국은 프랑스에 비할바 못되었는데도 그랬다.[2].[3] [4] 역시 전략전술의 중요성... 심지어 그 모든 싸움이 프랑스에서 벌어졌고 100년전쟁 내내 영국이 영국 본토에서 배타고 상륙할동안 프랑스는 영국 본토로 밀고 올라가거나 유의미하게 점령하지를 못했다.[5][6]이런 영토 분쟁만이 아니라 그 근간이 된 정략결혼의 결과 그 당시 영국왕인 에드워드 3세의 혈통들이 프랑스왕인 샤를 6세보다 정작 프랑스 왕가의 피를 더 많이 물려받은 즉 족보상 그 당시 현 프랑스 왕보다 현 영국왕이 더욱 프랑스 왕가 족보의 적통에 가까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영국측에서 이에 대해 프랑스 왕위에 대한 상속권을 정식으로 주장하면서 결국 터져버린 사건이 백년전쟁인 셈.
상술한대로 전쟁자체는 시도때도없는 프랑스군의 연전연패로 흘러갔으나 프랑스자체에서도 거의 포기하던 와중에 잔 다르크가 하늘에 뚝 떨어지다시피해서 프랑스 군과 백성들을 이끌어 영국군에 맞서싸워 승승장구 하였고, 결국 기세를 얻은 프랑스군이 잔의 죽음 이후에도 포르미니 전투나 카스티용 전투와 같은 전투에서 영국군을 대파하여 프랑스 영토에서 확실하게 몰아내면서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대역전승으로 끝맺었다.
결국 100년간의 전쟁의 결과로 영국군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가스코뉴 지방의 통치권도 다시 프랑스 왕실에게 반납하였고 완전한 섬나라가 되었으며 프랑스는 현 프랑스의 영역을 거의 확정짓게 되었다.
프랑스의 가스코뉴 지방과 플랑드르 지방의 지배권 문제와 프랑스 왕위계승 문제가 얽혀 벌어진 전쟁으로 백년전쟁이라는 이름대로 무려 100여년이나 벌어진 전쟁인데 프랑스는 100년 전쟁의 극후반부를 제외하곤 제대로 이겨본적이 전무하다(...)[1] 지금이야 두 나라 국력이 비슷비슷하지만 당시 백년전쟁 초기에만해도 인구수건 생산력이건 장비의 질이건 영국은 프랑스에 비할바 못되었는데도 그랬다.[2].[3] [4] 역시 전략전술의 중요성... 심지어 그 모든 싸움이 프랑스에서 벌어졌고 100년전쟁 내내 영국이 영국 본토에서 배타고 상륙할동안 프랑스는 영국 본토로 밀고 올라가거나 유의미하게 점령하지를 못했다.[5][6]이런 영토 분쟁만이 아니라 그 근간이 된 정략결혼의 결과 그 당시 영국왕인 에드워드 3세의 혈통들이 프랑스왕인 샤를 6세보다 정작 프랑스 왕가의 피를 더 많이 물려받은 즉 족보상 그 당시 현 프랑스 왕보다 현 영국왕이 더욱 프랑스 왕가 족보의 적통에 가까운 기현상이 발생하고 영국측에서 이에 대해 프랑스 왕위에 대한 상속권을 정식으로 주장하면서 결국 터져버린 사건이 백년전쟁인 셈.
상술한대로 전쟁자체는 시도때도없는 프랑스군의 연전연패로 흘러갔으나 프랑스자체에서도 거의 포기하던 와중에 잔 다르크가 하늘에 뚝 떨어지다시피해서 프랑스 군과 백성들을 이끌어 영국군에 맞서싸워 승승장구 하였고, 결국 기세를 얻은 프랑스군이 잔의 죽음 이후에도 포르미니 전투나 카스티용 전투와 같은 전투에서 영국군을 대파하여 프랑스 영토에서 확실하게 몰아내면서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대역전승으로 끝맺었다.
결국 100년간의 전쟁의 결과로 영국군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가스코뉴 지방의 통치권도 다시 프랑스 왕실에게 반납하였고 완전한 섬나라가 되었으며 프랑스는 현 프랑스의 영역을 거의 확정짓게 되었다.
3.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 [편집]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편에 서서 전쟁을 하였다.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같이 오스트리아를 다굴 놓으며 전쟁의 우위를 가져갔지만 영국은 국왕이 직접 참전하면서 데팅옌에서 프랑스를 발라버렸다. 이후 영국-오스트리아와 프랑스-프로이센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승리자 없이 애매해게 종전을 맺는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복수전으로 시작된 7년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각각 동맹국이었던 영국, 프랑스를 서로 바꿔서 편을 먹는(...) 동맹의 역전이 일어나고 이번엔 영국-프로이센, 프랑스-오스트리아로 편을 먹고 싸운다.
영국-프랑스의 전쟁은 크게 북아메리카와 인도 방면으로 나뉘는데 프렌치-인디언 전쟁으로 불리던 북아메리카 방면에서는 프랑스가 크게 앞서나가다가 제임스 울프가 이끄는 영국군이 저지, 이후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프랑스의 지원이 끊기면서 대부분의 북미 식민지를 영국에게 빼앗기고[7] 결국 패배한다.
인도 방면의 경우, 클라이브가 이끄는 영국 동인도회사군이 벵골과 연합한 프랑스군을 플라시에서 크게 격파해서 인도 식민지 싹쓸이 하고 깔끔하게 종결.
이후 오스트리아의 복수전으로 시작된 7년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이 각각 동맹국이었던 영국, 프랑스를 서로 바꿔서 편을 먹는(...) 동맹의 역전이 일어나고 이번엔 영국-프로이센, 프랑스-오스트리아로 편을 먹고 싸운다.
영국-프랑스의 전쟁은 크게 북아메리카와 인도 방면으로 나뉘는데 프렌치-인디언 전쟁으로 불리던 북아메리카 방면에서는 프랑스가 크게 앞서나가다가 제임스 울프가 이끄는 영국군이 저지, 이후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프랑스의 지원이 끊기면서 대부분의 북미 식민지를 영국에게 빼앗기고[7] 결국 패배한다.
인도 방면의 경우, 클라이브가 이끄는 영국 동인도회사군이 벵골과 연합한 프랑스군을 플라시에서 크게 격파해서 인도 식민지 싹쓸이 하고 깔끔하게 종결.
4. 나폴레옹 전쟁 [편집]
1804년, 제위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혁명의 혁명 정신을 전하고자, 그리고 프랑스 중심의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많은 나라를 침공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을 침공하고 이탈리아를 점령하여 이탈리아의 왕도 겸하였으며 신성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라인 동맹을 세우기도 한다. 이에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가 프랑스에 선전포고하였으나 무참히 깨지고 틸지트 조약을 체결. 유럽에서 나폴레옹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점령되지 않았던 나라가 있었으니 지겹도록 지겨운 영국이 그 주인공. 영국은 그당시 대불동맹을원조 천조국의 쇼미더머니의 위엄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오랜 앙숙인 영국만 지배하면 전 유럽을 통일할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영국 본토상륙을 시도했지만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호레이쇼 넬슨이 이끄는 대영 제국 함대에게 빌뇌브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대패하면서 영국 상륙의 꿈은 좌절된다.[8]
스페인 전역에서는 스페인 왕가를 몰아내고 자기가 왕을 하겠다는 조아킴 뮈라에게 빡친 스페인이 독립전쟁을 벌이자 영국이 이를 주목해 아서 웰즐리를 보내 프랑스군을 탈탈 털기 시작한다. 그러나 웰링턴이 정치적 문제로 잠깐 전선에서 빠진 사이, 나폴레옹이 직접 대군을 끌고 와서 영국군을 그대로 밀어내며 후임 사령관인 무어를 전사시킨다. 하지만 다시 웰링턴이 돌아오자 영국군은 나폴레옹이 떠난 프랑스군을 스페인 밖으로 밀어내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예 프랑스 본토까지 쳐들어가서 영국의 승리로 마무리 짓는다.
이후에 엘바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리에 무혈입성, 재집권에 성공하고 유럽 국가들과 평화교섭을 시도해보지만, 거부당했다. 이 후 프로이센이 먼저 프랑스를 공격하러 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을 격퇴한 후 근처의 아서 웰즐리가 지휘하던 영국군을 격퇴하러 가는데, 이 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전투가 워털루 전투이다. 이 전투 중간에 프랑스가 격퇴시켰던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영국을 지원하러 오고,[9] 결국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하며 20년의 나폴레옹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여담이지만 여기까지의 대결에서 프랑스는 잔 다르크가 있던 시절을 단 한번 빼고 영국한테 전부 패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점령되지 않았던 나라가 있었으니 지겹도록 지겨운 영국이 그 주인공. 영국은 그당시 대불동맹을
스페인 전역에서는 스페인 왕가를 몰아내고 자기가 왕을 하겠다는 조아킴 뮈라에게 빡친 스페인이 독립전쟁을 벌이자 영국이 이를 주목해 아서 웰즐리를 보내 프랑스군을 탈탈 털기 시작한다. 그러나 웰링턴이 정치적 문제로 잠깐 전선에서 빠진 사이, 나폴레옹이 직접 대군을 끌고 와서 영국군을 그대로 밀어내며 후임 사령관인 무어를 전사시킨다. 하지만 다시 웰링턴이 돌아오자 영국군은 나폴레옹이 떠난 프랑스군을 스페인 밖으로 밀어내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예 프랑스 본토까지 쳐들어가서 영국의 승리로 마무리 짓는다.
이후에 엘바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리에 무혈입성, 재집권에 성공하고 유럽 국가들과 평화교섭을 시도해보지만, 거부당했다. 이 후 프로이센이 먼저 프랑스를 공격하러 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을 격퇴한 후 근처의 아서 웰즐리가 지휘하던 영국군을 격퇴하러 가는데, 이 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전투가 워털루 전투이다. 이 전투 중간에 프랑스가 격퇴시켰던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영국을 지원하러 오고,[9] 결국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하며 20년의 나폴레옹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여담이지만 여기까지의 대결에서 프랑스는 잔 다르크가 있던 시절을 단 한번 빼고 영국한테 전부 패했다(...)
5.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편집]
사실상 영프 간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던 시기.
19세기에는 온갖 서양 열강들이 자국에서 안 팔리는 물건들을 해외로 헐값에 팔아치우겠다는 명목 하에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식민지가 많았던 나라가 대영 제국이였고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은 세계 4분의 1을 지배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아프리카, 아시아, 심지어 남아메리카에서까지 어딜가나 부딪혔다. 특히 아프리카 분할에 있어서 영국은 종단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고 프랑스는 횡단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이것이 서로 충돌하여 파쇼다 사건이 일어나 양국이 서로 전쟁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영국이 해군력이 자국의 해군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하지만 육군은 프랑스가 세계최강) 새로운 유럽의 강자였던 독일 제국을 한창 경계하던 상황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영국 양쪽에게 위협받는다면 프랑스의 생존은 보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는 횡단 정책을 포기하고, 자신들은 모로코를 가져가고 영국에게는 이집트의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타협을 본다.
19세기에는 온갖 서양 열강들이 자국에서 안 팔리는 물건들을 해외로 헐값에 팔아치우겠다는 명목 하에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식민지가 많았던 나라가 대영 제국이였고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은 세계 4분의 1을 지배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아프리카, 아시아, 심지어 남아메리카에서까지 어딜가나 부딪혔다. 특히 아프리카 분할에 있어서 영국은 종단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고 프랑스는 횡단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이것이 서로 충돌하여 파쇼다 사건이 일어나 양국이 서로 전쟁을 할 뻔한 적도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영국이 해군력이 자국의 해군력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하지만 육군은 프랑스가 세계최강) 새로운 유럽의 강자였던 독일 제국을 한창 경계하던 상황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영국 양쪽에게 위협받는다면 프랑스의 생존은 보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는 횡단 정책을 포기하고, 자신들은 모로코를 가져가고 영국에게는 이집트의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타협을 본다.
6. 1차 세계대전과 전간기, 2차 세계대전 [편집]
7. 현대 [편집]
2020년까지 둘 다 유럽연합의 일원이였고 영국이 탈퇴한 지금에도 양국의 사이는 나쁘지 않으므로 사실상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순수하게 흥미 차원에서 현대의 영국과 프랑스의 대결을 궁금해하는 밀덕들도 매우 많다. 일단 2021년 현재 양국이 전쟁을 할 일은 전혀 없지만, 미래는 모르는 법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할 일은 없지만 미래에 만약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거꾸러뜨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핵보유국이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상대방에서 핵폭탄을 사용한다면 그 핵폭탄을 사용한 쪽도 100% 똑같이 핵폭탄을 맞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영국이든 프랑스든 핵 앞에서는 장사 없다.
현대시대에 양국이 전쟁하게 되면 서로 무의미한 소모전을 펼치다가 결국 휴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
8. 군사력 비교 [편집]
8.1. 육군 [편집]
일단 육군은 양국 다 군축으로 다른 육군 강국들에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영국 육군 (British Army)이 2018년 기준으로 8만 2천여명 수준이고 (구르카 3,150명 포함) , 프랑스 육군 (French Army) 이 약 1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 (외인부대 약 1만명 포함) 이기 때문이다. 전차 역시... 양국 다 어마어마한 군축으로 200대 정도가 일선에서 운용되고 있는 것이 전부다. 다만 양국의 육군 모두 해외 파병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육군 항공 전력과 강력한 특수부대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영국 육군은 AH-64D 아파치와 SAS (공수특전단)을, 프랑스 육군은 타이거 공격헬기와 제1해병공수연대를 보유하고 있다.
편제 역시 양군이 동일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데, 양국 모두 2개 사단을 주축으로 한, 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본토 방위군인 1사단과, 기계화 사단인 3사단으로 편성되며, 프랑스군은 보병여단을 주축으로 한 1사단과 기갑/기계화 여단을 주축으로 한 3사단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프랑스군에는 별도의 독립 사령부로 해외 사령부와 외인부대 사령부가 있고, 영국군에는 독립 여단으로 16 공중강습여단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기갑 전력은 영국이 좀 더 앞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영국의 챌린저2 전차가 프랑스 육군의 르클레르 전차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챌린저2가 르클레르보다 우위였는지 모르겠음) 수는 프랑스가 좀 더 많긴 하다[10]. 하지만 프랑스군은 200여대 정도의, 105mm 포를 장착한 장륜 차량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전차 상대로는 아니지만 다른 영국군 기갑차량들에게 상당한 위협을 줄 수 있다. 영국군도 AJAX 장갑차를 도입 중에 있지만, 아직 완전 배치까지는 시일이 많이 남았고, 무장 역시 40mm 기관포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병 전투차나 병력 수송 장갑차는 양국 다 큰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영국군이 궤도형을, 프랑스군이 장륜형을 주로 운용해 영국군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갑이나 무장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다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해서 그런지 MRAP와 고기동 차량의 수는 영국 육군이 조금 더 많으며, 총력전에서는 모르겠지만 제한전이나 기동전에서는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포병 전력은 영국군이 조금 더 위다. 프랑스 육군이 운용하는 포병 전력은 자주포 (세자르+AMX-30 AuF1) 60대+TRF1 155mm 야포 12문, M270 MLRS 12대로, 총 84대 정도로 영국 육군이 운용하는 자주포 72대 (AS90)+M270B1 MLRS 27대, L118 105mm 야포 54문 등 총 153대/문 보다 열세다. 물론 세자르가 AS90보다 우위고, 105mm 야포를 운용하는 영국군보다 프랑스군이 155mm를 운용해 우위겠지만 애초에 수량이 너무 크게 차이 나고, 다연장포 역시 영국군이 훨씬 더 많다. 양측 모두 포병의 전산화는 비슷한 수준이지만....수량에서 프랑스군이 밀려 전체적인 전력에서 밀리는 것이다.
육군 항공 전력은 공격 헬기 전력에서는 영국군이, 수송 헬기 전력에서는 프랑스 군이 유리해 영국군이 약~간 우세한 정도다. 일단 공격헬기 전력을 보면 영국군은 AH-64D 아파치를 50대, AW-159 AH.1 와일드캣을 34대를 운용하고 있고, 프랑스군은 타이거 공격헬기 62대를 운용하고 있다. 타이거 공격헬기가 조금 더 최신이긴 하지만 최근 많은 논란들과, 데이터링크가 잘 안된다는 약점을 갖고 있어 아파치에 비해 여러모로 열세고, 대전차 미사등을 장착할 수 있는 와일드캣까지 보조 전력으로 존재해 영국군이 조금 더 우위라고 할 수 있다. 수송헬기 전력은...애초에 영국군이 수송헬기를 공군에서 운용하기도 하고...일단 프랑스군은 NH-90을 23대, 푸마 68대등을 보유해 총 91대로 큰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찰 전력은 프랑스군은 가젤을 99대, 영국 육군이 동종을 24대 보유해 프랑스군이 크게 우세해 보이지만, 영국군이 Watchkeeper+Hawk III 무인기를 135대나 보유해 정찰 전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거기다가 저속에다가 현대전에서는 별 쓸모는 없어보이긴 하지만 영국 육군은 Defender등의 고정익기를 13대나 정찰용으로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고로 육군 항공 전력은 영국군이 살짝....우세한 정도다.
보병 전력의 경우에는 전면전의 상황에서 별로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 있으나 진지를 잘 구축하고 대전차 화기를 충실히 갖춘 보병은 기갑 전력에게도 위협적인 수준이고, 여기다가 맨패즈까지 추가하면 미약하게나마 속도도 느리고 방호력도 낮은 육군 항공대 소속의 헬기들도 견제할 수 있다. 또 양국이 맞싸우게 될 유럽의 특성상 시가전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보병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시가전 상황에서는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충실한 장구류도 필요하다. 양군 모두 해외 파병을 많이 겪고, 이러한 상황에서의 훈련을 많이 하여 차이를 가르는 것은 화기가 될 텐데, 일단 박격포에서는 60mm와 81mm을 운용하는 영국군에 비해 120mm를 중대급에서 운용하는 프랑스군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관총의 경우는... 양쪽 다 똑같은 장비를 사용하여서.. 양군다 중기관총으로 M2 12.7mm 중기관총, 소대급 지원화기로 벨기에의 FN MAG, 분대급 지원화기로 벨기에의 FN Minimi를 운용하여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개인 화기의 경우에는... 영국군의 L85가 업그레이드가 없었다면 프랑스군이 당연히 우위라고 할 테지만, 영국군의 L85가 A3 스탠다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큰 차이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2018년 6월 HK-416F를 10만 2천정이나 주문한 상태라....HK416 기본형이긴 하지만 신뢰성과 정비성 등의 면에서 프랑스군이 조금 더 앞설 것으로 보인다.
편제 역시 양군이 동일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데, 양국 모두 2개 사단을 주축으로 한, 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본토 방위군인 1사단과, 기계화 사단인 3사단으로 편성되며, 프랑스군은 보병여단을 주축으로 한 1사단과 기갑/기계화 여단을 주축으로 한 3사단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프랑스군에는 별도의 독립 사령부로 해외 사령부와 외인부대 사령부가 있고, 영국군에는 독립 여단으로 16 공중강습여단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기갑 전력은 영국이 좀 더 앞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영국의 챌린저2 전차가 프랑스 육군의 르클레르 전차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챌린저2가 르클레르보다 우위였는지 모르겠음) 수는 프랑스가 좀 더 많긴 하다[10]. 하지만 프랑스군은 200여대 정도의, 105mm 포를 장착한 장륜 차량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전차 상대로는 아니지만 다른 영국군 기갑차량들에게 상당한 위협을 줄 수 있다. 영국군도 AJAX 장갑차를 도입 중에 있지만, 아직 완전 배치까지는 시일이 많이 남았고, 무장 역시 40mm 기관포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병 전투차나 병력 수송 장갑차는 양국 다 큰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영국군이 궤도형을, 프랑스군이 장륜형을 주로 운용해 영국군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갑이나 무장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다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해서 그런지 MRAP와 고기동 차량의 수는 영국 육군이 조금 더 많으며, 총력전에서는 모르겠지만 제한전이나 기동전에서는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포병 전력은 영국군이 조금 더 위다. 프랑스 육군이 운용하는 포병 전력은 자주포 (세자르+AMX-30 AuF1) 60대+TRF1 155mm 야포 12문, M270 MLRS 12대로, 총 84대 정도로 영국 육군이 운용하는 자주포 72대 (AS90)+M270B1 MLRS 27대, L118 105mm 야포 54문 등 총 153대/문 보다 열세다. 물론 세자르가 AS90보다 우위고, 105mm 야포를 운용하는 영국군보다 프랑스군이 155mm를 운용해 우위겠지만 애초에 수량이 너무 크게 차이 나고, 다연장포 역시 영국군이 훨씬 더 많다. 양측 모두 포병의 전산화는 비슷한 수준이지만....수량에서 프랑스군이 밀려 전체적인 전력에서 밀리는 것이다.
육군 항공 전력은 공격 헬기 전력에서는 영국군이, 수송 헬기 전력에서는 프랑스 군이 유리해 영국군이 약~간 우세한 정도다. 일단 공격헬기 전력을 보면 영국군은 AH-64D 아파치를 50대, AW-159 AH.1 와일드캣을 34대를 운용하고 있고, 프랑스군은 타이거 공격헬기 62대를 운용하고 있다. 타이거 공격헬기가 조금 더 최신이긴 하지만 최근 많은 논란들과, 데이터링크가 잘 안된다는 약점을 갖고 있어 아파치에 비해 여러모로 열세고, 대전차 미사등을 장착할 수 있는 와일드캣까지 보조 전력으로 존재해 영국군이 조금 더 우위라고 할 수 있다. 수송헬기 전력은...애초에 영국군이 수송헬기를 공군에서 운용하기도 하고...일단 프랑스군은 NH-90을 23대, 푸마 68대등을 보유해 총 91대로 큰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찰 전력은 프랑스군은 가젤을 99대, 영국 육군이 동종을 24대 보유해 프랑스군이 크게 우세해 보이지만, 영국군이 Watchkeeper+Hawk III 무인기를 135대나 보유해 정찰 전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거기다가 저속에다가 현대전에서는 별 쓸모는 없어보이긴 하지만 영국 육군은 Defender등의 고정익기를 13대나 정찰용으로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고로 육군 항공 전력은 영국군이 살짝....우세한 정도다.
보병 전력의 경우에는 전면전의 상황에서 별로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 있으나 진지를 잘 구축하고 대전차 화기를 충실히 갖춘 보병은 기갑 전력에게도 위협적인 수준이고, 여기다가 맨패즈까지 추가하면 미약하게나마 속도도 느리고 방호력도 낮은 육군 항공대 소속의 헬기들도 견제할 수 있다. 또 양국이 맞싸우게 될 유럽의 특성상 시가전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보병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시가전 상황에서는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충실한 장구류도 필요하다. 양군 모두 해외 파병을 많이 겪고, 이러한 상황에서의 훈련을 많이 하여 차이를 가르는 것은 화기가 될 텐데, 일단 박격포에서는 60mm와 81mm을 운용하는 영국군에 비해 120mm를 중대급에서 운용하는 프랑스군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관총의 경우는... 양쪽 다 똑같은 장비를 사용하여서.. 양군다 중기관총으로 M2 12.7mm 중기관총, 소대급 지원화기로 벨기에의 FN MAG, 분대급 지원화기로 벨기에의 FN Minimi를 운용하여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개인 화기의 경우에는... 영국군의 L85가 업그레이드가 없었다면 프랑스군이 당연히 우위라고 할 테지만, 영국군의 L85가 A3 스탠다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큰 차이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2018년 6월 HK-416F를 10만 2천정이나 주문한 상태라....HK416 기본형이긴 하지만 신뢰성과 정비성 등의 면에서 프랑스군이 조금 더 앞설 것으로 보인다.
8.2. 공군 [편집]
공군의 경우, 2019년으로서는 프랑스가 다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영국은 전투기 세력으로 F-35B를 18대,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142대, 총 160대의 전투기를 보유한데에 반해, 프랑스 공군+해군 항공대는 라팔 140대, 미라지 2000 시리즈 117대 등 총 257대의 전투기를 보유함으로서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영국이 5세대 전투기인 F-35를 보유하여 질적 우위를 차지하고는 있으나, F-35는 공대공 무장이 전부 인티된 상태가 아니며, 수량 역시 18대로 적은 편이다. 영국 공군의 수적 수력을 차지하는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경우,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로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이 인티되면서 중장거리 공대공 전투에서도 라팔에 밀리지 않으나, 전체적인 공군기 수에서 영국이 밀리는 데에다가 공격기였던 토네이도까지 퇴역한 상황에서 제공기에 가까운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임무가 과중되며 전투기 부문에서는 영국이 불리한 상황이다.
ISTAR의 경우, 영국이 조금 우위인 상황이다. E-3 센트리를 양국 모두 4대씩 보유하고는 있으나, 영국은 전문적인 정찰기인 RC-135W 리벳조인트를 3대, 본격적인 전자전기는 아니지만 전자전기로서 활용되는 정찰기 센티널 R1을 4대, 그리고 소형 정찰기인 쉐도우 R1을 6대 보유함으로서 프랑스군을 정찰기 수량/질에서 압도하는 상황이다. 해상 초계기가 없는 것이 흠이지만, 영국 공군 역시 P-8A 포세이돈을 9대 도입하고, 센티널 R1의 퇴역으로 인해 생길 공백을 쉐도우 R1의 추가 도입, E-3 센트리를 대체할 E-7 웨지테일의 도입 등, 이 분야에서는 프랑스보다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송기와 급유기의 경우, 수송기는 수량에서는 프랑스가 앞서긴 하나, 영국과 같이 중대형 수송기를 보유하지 못한 점이 프랑스의 주요한 약점으로 꼽힌다. A400M의 도입이 완료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프랑스 공군의 주력 수송기는 CN-235와 같은 소형 수송기이며, C-130등, 중소형 전술 수송기들이 주력을 이룬다. 그리고 영국은 C-17 8대를 보유한 점에서는 프랑스보다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가 아프리카 분쟁에 개입할 때 수송기가 부족하여 영국 공군이 수송기를 지원한 적이 여러번이다. 급유기의 경우는 프랑스의 주력 기체는 KC-135F/R이지만, 14대나 되어 수적으로 영국을 압도하고, 낡았긴 하나 실전에서 검증된 급유기라는 점, 예정된 A330 도입등으로 프랑스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ISTAR의 경우, 영국이 조금 우위인 상황이다. E-3 센트리를 양국 모두 4대씩 보유하고는 있으나, 영국은 전문적인 정찰기인 RC-135W 리벳조인트를 3대, 본격적인 전자전기는 아니지만 전자전기로서 활용되는 정찰기 센티널 R1을 4대, 그리고 소형 정찰기인 쉐도우 R1을 6대 보유함으로서 프랑스군을 정찰기 수량/질에서 압도하는 상황이다. 해상 초계기가 없는 것이 흠이지만, 영국 공군 역시 P-8A 포세이돈을 9대 도입하고, 센티널 R1의 퇴역으로 인해 생길 공백을 쉐도우 R1의 추가 도입, E-3 센트리를 대체할 E-7 웨지테일의 도입 등, 이 분야에서는 프랑스보다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송기와 급유기의 경우, 수송기는 수량에서는 프랑스가 앞서긴 하나, 영국과 같이 중대형 수송기를 보유하지 못한 점이 프랑스의 주요한 약점으로 꼽힌다. A400M의 도입이 완료되면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프랑스 공군의 주력 수송기는 CN-235와 같은 소형 수송기이며, C-130등, 중소형 전술 수송기들이 주력을 이룬다. 그리고 영국은 C-17 8대를 보유한 점에서는 프랑스보다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가 아프리카 분쟁에 개입할 때 수송기가 부족하여 영국 공군이 수송기를 지원한 적이 여러번이다. 급유기의 경우는 프랑스의 주력 기체는 KC-135F/R이지만, 14대나 되어 수적으로 영국을 압도하고, 낡았긴 하나 실전에서 검증된 급유기라는 점, 예정된 A330 도입등으로 프랑스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9. 관련 문서 [편집]
[1] 물론 중간에 현명왕 샤를 5세라는 뛰어난 왕과 뒤 게클랭같은 장군이 등장해 영국에게 꽤나 큰 괴로움을 선사했고 잃었던 영토도 대부분 되찾는 활약을 했지만, 주로 게릴라전으로 이룬 성과이고 그 이전 프랑스가 참패했던 크레시 전투와 같은 큰 규모의 전면전에서의 승리로 이룬성과가 아니었다.[2] 어찌보면 그랬던 점 때문에 영국 입장에선 프랑스땅 정복에 대한 욕망이 컸다. 존 왕이 삽질하기전 보유했던 프랑스 영토의 꿀같은 생산력을 이미 맛봤었으니 더더욱. 역시 없어져봐야 소중함을 더 느끼는법[3] 백년전쟁이 지속되며 영국은 프랑스 영토를 다시 확보하고 프랑스의 기술들을 모방해가면서 그 격차를 조금씩 좁히려고 노력했다.[4] 다만 백년전쟁은 근대적 국민의식이 형성되기 전이라 사실상 영국왕vs프랑스왕의 싸움에 귀족들은 자기들 이익에 따라 여기저기 붙는 모습이었는데, 결혼과 상속으로 인해 영국왕이 가진 영지가 프랑스왕이 가진 영지보다 더 큰적이 있을 정도라서 프랑스땅의 생산력은 무의미 했다[5] 단 이는 어느정도 시대상 특수성문제도 있었는데 그 당시 귀족간 결혼에선 혼수품으로 귀족령중 일부가 오가는 경우도 있었다. 백년전쟁 전후로는 프랑스 왕국의 대대적인 압박으로 거의 전무한 상황까지 갔지만 심할 경우 백년전쟁 이전의 최고기록은 심할때가 프랑스 영토의 영국왕 직할령이 프랑스 왕 직할령보다 컸을정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분쟁기미가 심화되기 시작하며 백년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엔 공식적으로 영국 휘화의 프랑스령은 가스코뉴지역 뿐이었다. 어쨌든 영국쪽에선 섬나라이면서도 대륙쪽에 상륙할 기반이 확실히 존재했던 반면 프랑스쪽에선 그렇지 못했다는 것.[6] 하지만 샤를 5세 시절 해군 제독으로 임명 되었던 장 드 비앵이 영국 해안을 침공 및 약탈하여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고 해전에서도 영국군을 격파하여 영국의 제해권에 타격을 주기는 했다.[7] 퀘벡부터 시작해 프랑스령 캐나다까지 루이지애나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를 빼앗겼다! 그 와중에 루이지애나지역만 영국이 건들지 않은 이유는 거기까지 밀어버릴 힘도 있었으나 그 당시 그지역에 심한 전염병이 돌아서 괜히 그런 땅덩이 하나 먹자고 군대에 전염병 퍼트릴 생각은 못했기 때문(...)이었다.[8] 사실 그 전부터 포기했었다. 빌뇌브 제독이 자신의 함대의 수준을 알고 계속 영국 해군을 피해다녔기 때문에 나폴레옹도 이미 군 돌려서 오스트리아 가고 있었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사실상 쐐기를 박은 전투.[9] 나폴레옹이 프로이센군을 격퇴시킨후 그루시에게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라고 명령하는데, 이미 늦은 때였다.[10] 프랑스 군이 운용하는 전차는 240대, 영국군은 2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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